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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대신해 자연이 선택했다– 찰스 다윈과 진화론의 탄생 1. “인간은 신이 만든 존재일까?”19세기 초,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믿고 있었습니다.“신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생물은 불변하며, 종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하지만 한 사람은 이 통념에 조용히 의문을 던졌습니다.찰스 다윈(Charles Darwin), 그 이름은 오늘날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립니다.그가 제안한 이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서, 인간의 기원, 종교, 도덕, 정체성까지 뒤흔들었죠.2. 의사도, 신학자도 아닌 청년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의 부유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아버지는 그를 의사로 만들고 싶어 에든버러 대학교에 보냈지만, 다윈은 수술을 보며 기절할 만큼 의사와는 맞지 않았습니다.그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게 되지만, 그의 관심은 ..
세상을 수학으로 설명한 사나이 - 아이작 뉴턴 – 아이작 뉴턴, 고전 물리학의 창시자1. 사과는 왜 떨어졌을까?세계를 바꾼 천재의 전설은 종종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죠. 하지만 단지 사과를 본 것만으로 중력의 법칙을 정립한 것은 아닙니다.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은 1643년 1월 4일, 영국 링컨셔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그가 태어난 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해요. 과학이라는 횃불이 갈릴레오에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듯한 상징적인 순간입니다.뉴턴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재혼하며 할머니 손에 자라났습니다. 외로운 유년기였지만, 그 고요한 시기는 그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깊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2..
별을 바라본 사람, 갈릴레오 갈릴레이 – 근대 과학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1. 르네상스의 아들, 피사에서 태어나다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1564년 2월 15일, 이탈리아의 피사(Pis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우연히도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죠.르네상스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 그는 수학과 철학, 음악에 능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학문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났습니다.갈릴레오는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피사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금방 흥미를 잃고 수학과 자연 철학(오늘날의 물리학과 천문학)에 빠져들었어요. 그는 자연 세계의 원리를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해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 “모든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 – 물리학의 시작갈릴레오가 가장 먼저 주목받은..
옥타비아누스, 혼란의 로마를 제국으로 바꾸다 —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에서 초대 황제로 —1. “나는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다”기원전 63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는 평범한 기사 계급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겐 권력자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았지만, 운명은 아주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기원전 44년, 줄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 공개된 유언장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유산의 법적 상속자로 지명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19세.카이사르의 이름을 계승한 그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개명하며, 로마의 중심 무대에 올라섭니다.하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 로마는 이미 수많은 장군과 ..
클레오파트라의 자녀들, -사라진 왕조의 마지막 피 — 세계 제국의 심장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비극 —1. 황제의 아들이자 이집트의 마지막 왕, 카이사리온클레오파트라의 첫째 아들은 프톨레마이오스 필로파토르 필로메토르 카이사르, 흔히 `카이사리온(Caesarion)`이라 불립니다. 그는 기원전 47년, 줄리우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이름부터가 ‘작은 카이사르’라는 뜻입니다.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간 후에도 클레오파트라는 아들을 대중적으로 카이사르의 유일한 혈육이라며 강조했습니다.그녀는 카이사르가 죽은 후, 로마를 잇는 유일한 적통 후계자임을 내세워 카이사리온을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로 즉위시킵니다.📌 카이사리온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언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2. 안토니우스와의 세 아이들클레오파트라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로마를 사랑한 장군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연인 — 권력, 전쟁, 사랑 속에 무너진 제국의 남자 —1. 시저의 오른팔로 떠오른 남자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83년,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연설 능력과 용맹한 성격으로 이름을 날렸고, 곧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측근이자 충실한 장군으로 떠오릅니다.특히 갈리아 전쟁과 같은 주요 전투에서 그는 카이사르와 함께 싸우며 명성을 쌓았고, 카이사르가 독재관으로 집권할 때는 사실상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군인 중 하나가 됩니다.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기원전 44년, 안토니우스는 유언 낭독과 장례식 주재를 맡으며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그날 카이사르를 기리는 열변으로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동시에 정적들을 압박하는 정치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2. ..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진짜 이야기 — 아름다움이 아닌 지혜와 전략으로 로마를 뒤흔든 여왕 —1. 누구도 무시할 수 없던 여왕의 탄생기원전 69년,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왕조는 사실 마케도니아계 그리스인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후손이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정통 이집트인이 아닌 그리스계였죠.놀라운 사실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어를 구사한 최초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족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전 왕들은 자국민과의 소통조차 통역을 통해 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직접 민중의 언어로 말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녀의 진짜 힘은 외모가 아닌 언어 능력, 정치 감각, 학문적 소양에 있었죠.2. 왕위 계승의 피바람 속으로클레오파트라는 18세의 나이에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의 모든 것 1. 이름만 들어도 압도적인 존재감‘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비행기 도안’, ‘해부도’...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 이름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그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 해부학자, 공학자, 음악가까지...한 인간이 어디까지 다재다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인물입니다.2. 비범한 시작 – 평범하지 않았던 유년기다 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다 빈치'라는 이름도 “빈치 출신”이라는 뜻이죠.그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농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혼외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