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사-인물사전

세상을 수학으로 설명한 사나이 - 아이작 뉴턴

– 아이작 뉴턴, 고전 물리학의 창시자

1. 사과는 왜 떨어졌을까?

세계를 바꾼 천재의 전설은 종종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죠. 하지만 단지 사과를 본 것만으로 중력의 법칙을 정립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은 1643년 1월 4일, 영국 링컨셔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해요. 과학이라는 횃불이 갈릴레오에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듯한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뉴턴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재혼하며 할머니 손에 자라났습니다. 외로운 유년기였지만, 그 고요한 시기는 그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깊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2. 캔브리지 대학, 그리고 흑사병의 피난처에서

1661년,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수학, 물리학, 천문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당시 교수들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665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며 케임브리지 대학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2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업적의 초석을 마련했어요:

  • 미적분학의 창시
  • 만유인력의 법칙
  • 빛의 성질 연구

이 시기를 흔히 과학사에서는 `뉴턴의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릅니다.

3. 만유인력의 법칙 –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뉴턴이 정립한 가장 위대한 법칙 중 하나는 바로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입니다.

그는 단순히 사과가 떨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달이 왜 지구를 돌고 있는가?”,
“행성들은 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학적으로 탐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설명합니다:

F = G × (m₁ × m₂) / r²
(F는 두 물체 사이의 인력, m은 질량, r은 거리)

이 법칙은 단순히 지구상의 운동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공식이었습니다. 갈릴레오가 실험을 통해 물리학의 문을 열었다면, 뉴턴은 그 문을 수학으로 완전히 설계한 셈이죠.

4. 프리즘을 통과한 빛 – 색의 정체를 밝히다

뉴턴은 빛과 색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프리즘을 통해 햇빛을 통과시켰을 때, 단일한 흰빛이 무지갯빛으로 분산되는 현상을 관찰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프리즘이 ‘색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지만, 뉴턴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빛은 원래 여러 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리즘은 그걸 분리해 보여줄 뿐이다.

그의 빛 실험은 이후 색채 이론과 광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사진, 렌즈, 망원경 등 수많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5. 미적분학의 창시자, 그러나 라이프니츠와의 논쟁

수학에서도 뉴턴의 업적은 엄청납니다. 그는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정립하며, 자연 현상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죠.
하지만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도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미적분을 개발하면서, 두 사람은 “누가 진짜 창시자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두 사람이 각각 독립적으로 미적분을 발견했다고 인정되고 있지만, 뉴턴은 당시에 이 문제로 크게 상처받았고, 이후 학문 공동체와 일정 거리감을 두게 됩니다.

6. 『프린키피아』 – 세상을 설명한 한 권의 책

1687년, 뉴턴은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인 『프린키피아(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를 출간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운동의 법칙 3가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개했습니다:

  1. 관성의 법칙 – 정지 또는 등속 운동 상태는 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된다.
  2. 가속도의 법칙 – F = ma (힘 = 질량 × 가속도)
  3.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 작용하는 힘에는 항상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존재한다.

이 세 가지 법칙은 오늘날 고등학교 물리 수업의 기초이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기술의 근간이 되었죠.

7. 연금술, 종교, 그리고 금화 위의 얼굴

뉴턴은 단지 과학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종교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연금술 연구에도 몰두했으며, 말년에는 영국 조폐국(Mint)의 책임자로도 활동합니다.

그는 위조지폐를 추적하고 처벌하는 데 있어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였고, 실제로 몇몇 위조범들을 직접 심문하고 감옥에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뉴턴은 1705년 ‘경(Sir)’의 칭호를 받은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하며,
영국의 1파운드 지폐와 동전에는 그의 초상화가 새겨지기도 했습니다.

8. 세상의 설계를 수학으로 풀어낸 사람

1727년, 뉴턴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으며, 같은 장소에는 훗날 다윈, 호킹과 같은 과학자들도 함께 잠들게 됩니다.

그가 남긴 업적은 단지 공식이나 수식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현상은 합리적인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세상을 수학으로 설명한 사나이 - 아이작 뉴턴

마무리하며 – 천재는 외로웠다

뉴턴은 생애 대부분을 사교성이 없는 고독한 천재로 살았습니다. 그와 가까운 친구는 거의 없었고, 자신이 이룬 성취를 스스로 자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겸손해 보이지만, 동시에 과학의 연속성과 공동체성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케플러의 행성 이론, 데카르트의 좌표 체계 등, 수많은 선배들의 노력 위에 뉴턴의 과학이 있었던 것이죠.


📌 뉴턴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

  •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든 물리학의 기본 이론이 그의 법칙 위에 서 있음
  • 인공위성, 항공우주, 자동차 공학, 건축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됨
  • “과학은 논리와 수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림